보고 싶은 책 두 권을 책상에 올려 둔것 만으로도 넉넉한 기분이다. 이 책을 보다가, 또 저 책을 볼 수 도 있으니깐. 좋게 말하면 관심사가 많고, 호기심이 다양한 것. 안좋게 말하면 하나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것. 그래도 여러 권을 보더라도 좋아하는 그 순간에 흠뻑 빠져든다면 장점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구상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여행, 독서, 음식, 선물, 가족, 운동, 예술, 인생, 진로 등등 삶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가보지 않은 곳, 읽어보지 않은 책, 먹어보지 않은 음식,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은 끊임없이 펼쳐진다. 사실 끊어졌다는 것도 이상할 일이겠다 싶다. 삶은 계속 흘러가고, 나의 생각과 가치관도 변해갈텐데 한 자리에서만 머무르지는 못할 테니깐 말이다.
커리어에 있어서는 이런 행보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아 보인다. 그게 일반적인 삶의 기준이라면 말이다. 한 우물을 파야 성공을 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안정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익히 들어왔다. 누군가에게는 맞는 옷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 느껴진다. 세상 사람이 모두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살아갈 수 없듯이, 저마다에게 어울리는 옷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그 옷이 무엇일까를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옷을 입는 것이 내 마음의 상태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었을 때 진정으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그 옷을 만드는 여정이라고 표현하면 더 적절할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이유도 책을 곁에 두고 펼쳤다 덮었다를 반복하고, 또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이 순간이 나에게 어울리는 순간이라 느껴서일테다.
어제 새롭게 펼쳐든 책 ‘가치 있는 삶’의 마리 루티 작가의 말을 빌려 힘을 얻었다.
p. 40
인간은 자동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저항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욕망을 공동체의 욕망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는 어느 정도의 자유로움과 어느 정도의 독창성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진정성이 우리 욕망과 마음이 가진 독특한 열망의 일치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 이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욕망과 이상의 상관관계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욕망은 (아직) 달성되지 않은 이상, 즉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우리는 이상에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을 추구할 때마다 진짜 살아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패하면,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을 충실히 따르지 못했다고 느낀다. 불안은 우리가 가진 이상이 기성문화가 제시하는 이상과 맞지 않더라도, 우리의 욕망과 이상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신호다. 따라서 우리 기질이 진정성을 갖길 바란다면 우리는 욕망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즉, 우리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욕망이 불러일으킨 열정의 리듬을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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